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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밸런스] 천년의 세월을 기억하고 있는 흥법사지
  • 글쓴이 : 운영자
  • 2019-02-22 09:35:10
  • 조회: 108

천년의 세월을 기억하고 있는

흥법사지

 

 

 

강원문화재자료 제45호
지정일:
1984년 6월 2일
위치: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
시대: 신라시대

 

폐사지에 차가운 바람이 분다. 추위에 시간마저 멈춘 듯 옛 스님의 업적이 새겨진

무거운 비신을 등에 지고 절터를 노니는 돌거북마저 얼어붙었다.
원주에는 유명한 옛 절터가 많다.

신라시대 경주에 집중되었던 불교가 고려시대에 들어와 국토의 전 지역으로

뻗어나갈 때 원주 일대는 불교가 특히 발전한 곳 중 하나였다.

이미 소개했던 거돈사지, 법천사지는 물론 흥법사지도 마찬가지이다.
고려초 두 분의 국사, 한 분의 왕사가 머물던 대찰에는

이제 몇몇 석물들만 남아 절터를 지키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어 폐사가 되고 유생들에게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것도 모자라 일제강점기에 다시 유린을 당한다.
천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지광, 원공국사와 진공대사의 승탑이

정원에 장식용 석물로 사용되기 위해 해체되어 자기 자리를 떠나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기영 기자 mod1600@hanmail.net

 

 

 

 

 

고려 불교의 성지였던 흥법사지

앞에는 섬강이 흐르고 영봉산이 뒤를 감싸고 있는 흥법사지에는 흥법사 빈터 위에 흥법사지 삼층석탑(보물 제464호)과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제365호)가 세월의 흔적을 안고 서 있다.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흥법사는 '원주 3대 폐사지'의 하나로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진공대사가 고려 태조의 왕사로 신임을 받으며 번창했던 고려 불교 성지였다.
기록에 의하면 흥법사지는 통일신라 말 사찰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건물터를 살펴보면 탑의 동쪽 10m 지점 축대위에 중문(中門)으로 보이는 터가 있고, 탑 앞 서쪽에 절 중심 건물인 금당(金堂)으로 보이는 터가 있다. 또 주변에 여러 건물터와 샘이 있고 북동쪽 산기슭에는 진공대사탑을 모셨던 자리가 남아 있다.

 

 

 

기둥

 

  

탑비

 

진공대사 탑비

진공대사는 고려 태조의 왕사로서 940년(태조 23)에 돌아가시자 태조가 직접 글을 지었다고 하는데 탑비의 본체는 파손돼 현재 국립박물관에 있으며 이 곳에는 비의 받침부분인 귀두와 비의 덮개 부분인 이수 부분만 남아 있다.
사진에서 귀두 부분과 이수 부분사이에 비의 본체가 있어야 한다. 비가 있어야 완전한 진공대사비가 된다. 진공대사의 사비를 모신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보물 제356호)과 석관은 고려 초기의 패기가 넘치는 우수한 작품으로 지금은 경복궁에 보관하고 있다.
흥법사가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전기까지 절과 진공대사탑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을 보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고려 태조가 흥법선원을 만들어 진공대사에게 교사를 맞기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기록을 보아 고려 전반기의 선종계 사찰로써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3.2m 높이의 흥법사지 삼층석탑

흥법사지에는 진공대사탑비를 비롯해 삼층 석탑이 유물로 남아 있는데 흥법사지 삼층석탑은 높이 3.2m로 보물 제46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중의 기단 위에 몸체부를 갖춘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흥업사지 삼층석탑의 1층 기단에는 기둥을 새기지 않은 대신 안상(탑 면석에 팔면이 오금곡선으로 안쪽을 파낸 모양)을 새기고 그 안에 땅으로부터 꽃이 솟아나는 모습을 조각해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층 기단의 면은 여러 장의 돌을 만들었으며 모서리기둥과 버팀기둥을 새겨 놓았으며 기단의 갑석(뚜껑처럼 덮은 돌) 위에 탑의 몸돌과 만나는 부분은 3단으로 꺾어 놓았다.
또 탑의 몸돌은 한 면에 2개의 모서리기둥을 새겨 놓았으며 몸돌의 폭과 탑 몸체의 높이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줄어 탑의 윗부분이 빈약하게 보인다.
그리고 탑 위의 장식물로는 노반(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과 복발(탑의 윗쪽에 주발같이 엎어 놓은 장식)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흥법사지를 둘러보다 보니까 주변에는 사찰 건물에 사용되었을 기와 조각들과 함께 옛 사찰에 관한 다양한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사찰이라면 확실한 고증을 거쳐 하루빨리 복원을 해 많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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