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차로
선택
자동완성
검색어 자동완성
 
  • [라이프 밸런스] 텅빈 그 자리에서 충만함을 느끼다.

    천년 고찰 불교 문화 유적지 '원주 거돈사지'

  • 글쓴이 : 운영자
  • 2018-12-13 09:21:55
  • 조회: 134

 

 

텅빈 그 자리에서 충만함을 느끼다.
천년 고찰 불교 문화 유적지
원주 거돈사지

 

 

 

 

이번에는 폐사지를 찾아갔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울적할 때 떠나보라고 했던 바로 그 폐사지이다.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많은 폐사지.
그 중에서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유 교수가 처음 권했던 원주 거돈사지이다.
인적이 드문 길을 오르다 보면 수령을 가늠하기 힘든 거대한 크기의 느티나무가 보인다.

그 뒤로 거돈사지가 펼쳐진다.
처음 그곳에 간 사람은 우선 그 규모에 놀란다. 폐사지가 워낙 넓고 많은 유물들이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큰 사찰이었기에 이런 규모의 폐사지가 존재하는 거지?

그랬던 사찰이 왜 갑자기 사라진 거지?


  이기영 기자
  mod1600@hanmail.net

 

 

   

원공국사탑비

 

사람들의 이런 의구심을 더욱 자극하는 것은 폐사지 구석에 있는 원공국사탑비이다. 보통 사찰 같았으면 그냥 지나칠 비석이겠지만 폐사지의 황량함은 지나는 사람의 눈길을 그곳으로 집중시킨다. 자연스럽게 귀부와 이수가 보이고 그 화려함에 넋을 잃고 만다. 
안내판을 읽어보면 원공국사탑비와 짝을 이루었던 원공국사 부도는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인이 서울로 가져갔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배례석

 

원공국사탑비를 보고 왼쪽으로 돌아서면 약 7,500평의 절터가 펼쳐진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돈사의 금당터 앞에 새워진 삼층석탑이다.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위로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모습이다. 다만 돌로된 축대 안에 흙을 쌓고 그 위에 탑을 세운점이 특이하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했다. 5단의 밑받침을 둔 지붕돌은 두꺼우면서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곡선을 이루고 있다. 처마는 직선을 이루는데 끝부분에서의 들림이 경쾌해 통일신라 양식임을 알 수 있다. 탑의 꼭데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이 있고 그 위에 연꽃모양의 보주를 얹어 놓았다.
탑의 조성연대는 2단을 이루는 기단구조와 기둥 모양의 새김, 5단의 지붕돌 받침 등이 수법으로 보아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탑 앞에는 배례석이 놓여 있다.

 

 

 

 


 

 

 

불좌대  

 

삼층석탑 뒤 금당지(金堂址)에는 전면 6줄, 측면 5줄의 주춧돌이 보존되어 있어 기둥을 세운다면 20여 칸의 대법당으로 추론할 수 있다. 금당 중앙에는 2m가 넘는 거대한 화강암 불좌대가 있다. 불좌대에 부처님이 계셨더라면 합해서 높이가 족히 5미터가 되는 거대한 불상이었으리라. 금당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금당지 뒤로는 경전을 강의하는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큰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열심히 용맹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사방에 전각들의 주춧돌이 발굴된 상태로 가지런하다. 지나는 곳마다 쌓은 석축이며 물길을 낸 돌 하나하나에도 천년의 시간을 같이하는 소중하고 경건하다. 강당을 뒤로하고 산 언저리에 세워져있는 보물 190호 원공국사탑(圓空國師塔)으로 향했다.

 

 

 


 

 

 

원공국사탑

 

현재 세워져있는 승묘탑은 복제품이고 실물은 국립박물관에 있다. 이곳에 있는 것은 2007년에 세웠다. 승묘탑을 중심으로 왼쪽 60m 지점에 보물로 지정된 원공국사승묘탑비(圓空國師塔碑)가 있다. 귀부의 모양이 앞서 봐왔던 귀부들과 서로 달랐다. 귀부의 머리는 사나운 용의 머리모양이다. 등껍질에는 卍모양과 연꽃무늬를 양각으로 새겼다. 이수는 구름 속을 요동치며 불꽃에 쌓인 여의주를 다투는 용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매우 사실적이고 화려하다. 비문에는 탑비의 주인공인 원공국사의 생애와 행적, 그리고 그 덕을 기리는 글이 실려 있다.

 

 

고려를 이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오던 사찰은 임진왜란에 의해 모두 불에 타 버렸다.
정확한 기록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 지역을 지나 북상하던 왜군이 승병의 거센 저항에 이
주변의 절들을 불태우며 지났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유난히 이 주변의 절들이 불에
타 폐사된 곳이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닐까?

 

위치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57

문의   742-2111

 







Tags :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쓰기

많이 본 기사


교차로 뉴스